년 전 우리 양주(부부)는 5살배기 손녀딸을 데리고 북한의 한 산골에 있는 아들집에서 500리 길이 넘는 시내에 있는 딸과 함께 살고 있는 우리 집으로 떠났다. 우리가 아들집에 다니는 것이 부담된다는 이유로 며느리가 이혼을 요구하자 아들은 기숙사로 들어가 살기로 하고 5살 되는 손녀딸은 우리에게 맡겨졌다.

아들은 집에 남은 강냉이를 털어서 싸주면서 밑천으로 삼아 떡장사라도 하라고 하였다. 하루에 100여리씩 걷고 밤이면 이집 저집 문을 두드려 사정을 하고 떼를 써서야 겨우 아픈 다리를 쉬울 수 있었다. 집이 가까워질수록 예쁘게 웃는 딸애의 모습이 어려와 지친다리에는 기운이 솟았다.

그러나 문 앞에 마주서는 순간 문에는 낯선 자물쇠가 걸려있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 애는 어디 가면서 망가진 자물쇠를 걸어놓았나” 서운함과 책망이 엇갈리며 문을 여는 순간 부엌문과 이불장문은 열린 채로 있고 여기저기 제자리를 못잡은 그릇과 옷가지들이 널려 있었다.

사람이 사는 집 같지 않았다. 집에서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는 예감이 들었다. 온몸의 힘이 싹 빠져 나갔다. 우선 집을 정돈하고 연유를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아궁이에 불을 지핀 다음 물통을 들고 샘터로 갔다. 샘이 깊어서 엎디어 겨우 한바가지를 뜨고 허리를 펴는데 인민반장이 서있었다.

인사도 없이 싸늘한 눈길로 나를 보던 반장은 “그 집 딸은 어쩌면 그렇소, 여자가 구류장벽을 뚫고 도망을 치다니” 한마디 던지고는 더 물어볼 사이도 없이 물통을 들고 가버렸다. 마른하늘에 날 벼락같은 그 말에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급히 채 담지도 않은 물통을 들고 집에 들어왔다.

콘크리트 벽체를 뚫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분명한 것은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과 분주소에 갇혀있다는 것이었다. 대충 집을 정돈해놓고 급히 한마을에 사는 딸의 친구인 영숙이네 집에 가보았다.

집에는 어린아이들과 세대주만 있을 뿐 딸의 친구와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농촌장사를 갔는데 언제 올지는 모른다고 했다. 일단 집에 돌아가 마음을 안정시키고 다가올 일들에 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잠자리에 들었지만 지칠대로 지친 다리와 허리가 쑤시고 저려오는데다가 온갖 불길한 생각이 심신을 괴롭혀 전혀 잠들 수 없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우리 집과는 조금 떨어져있는 딸의 친구인 명옥이네 집에 갔다. 우리 양주가 없을 때 명옥이가 우리 집에 와서 함께 있기로 했기에 명옥이는 알고 있을 것 같았다. 마침 명옥이가 반갑게 맞이했다.

명옥이가 “금영이가 분주소에서 많이 맞고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안전원이 금영이보고 “이 간나, 너 중국 가서 몇놈하고 잤어? 돈은 얼마나 벌었어?” 하며 그런 적 없다는 금영이에게 중국 놈의 것은 얼마나 좋더냐며 대라고 사정없이 때렸다고 했다.

그자가 한 말을 차마 그대로 옮기지 못하겠다. 얼마나 야비하고 비속적인 말을 썼는지 차마 그대로 적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그자가 그렇게 말하는 원인을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작년 겨울 명옥이네 집에 놀러간 딸애가 그 집에서 잤는데 숙박을 하던 처녀애가 딸애의 바지와 동복, 신발까지 챙겨가지고 달아났다. 식구들 모두 깊이 잠든 사이라 몰랐다고 했다. 영하 20도 아래로 내려가는 강추위 속에서 겨울옷 없이는 살아 갈수는 없다.

그렇다고 그날 벌면 먹고 못 벌면 굶고 하는 우리의 생활에서 새로이 장만한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고민 끝에 딸애는 압록강을 넘었다. 장백에는 먼 친척이 있는데 우리 집에도 장사 차 몇 번 온 적 있었다.

그 집에 가서 도움을 청하려고 했지만 정작 찾지 못하고 한 마음씨 착한 조선족 집에서 적지 않은 옷가지들을 얻어가지고 왔다. 우리 집에서 숙박하던 두 청년들이 딸애가 중국에 갔다 온 사실을 말하게 되었다. 나도 딸애도 없는 동안 우리 영감이 잘 곳 없는 청년들을 재우고 그들이 사온 쌀로 밥을 해주어 생계를 유지하였던 것이다.

집이 잠깐 빈 사이 두 청년은 옷 보따리와 그릇들을 챙겨가지고 집을 나오다가 마침 우리 집 앞을 지나던 담당분주소 안전원들에게 들켰다. 이들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안전원들은 우리 딸애가 중국에 갔다 온 사실을 알게 되었고 딸애를 끌어다 며칠 동안 구류장에 가두어 놓고 모진 매를 들며 심문을 하였다고 한다.

구류장에 갇히면 집에서 밥을 날라다 주어야 한다. 하지만 남편도 청년들의 도움으로 먹고 살았는데 청년들이 잡히고 나니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집에 있는 남편이나 구류장에 갇힌 딸애나 굶기는 마찬가지였다.
 
몇날 며칠 굶으며 조사를 받았다. 다행히 중국에 갔다 온 기간이 짧고 단순 월경인데다가 집안생활이 어려운 것을 보고 분주소 내에 동정하는 사람 몇몇이 힘을 써 풀어주었다. 그 이후에 남편은 아들집으로 내려오고 딸애 혼자 친구와 함께 있었는데 이때 일이 생긴 거였다. 선심 쓰듯 풀어주고 흑심을 품은 담당주재원은 감시한다는 명목 하에 매일같이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늘 같이 있으니 눈에 가시인 딸애의 친구를 협박하여 쫓아내고 기회를 노렸다. 밤중에 딸애 혼자인 집에 뛰어든 이 자는 딸애를 겁탈하려 했다. 딸애가 완강히 거부하자 온갖 멸시와 욕으로 화풀이를 하였다.

금영이의 행방은 명옥이도 모르고 있었다. 분주소에 직접 알아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내가 가면 사실을 알려주기는 커녕 온갖 욕에 강제로 쫓겨날 것이 뻔했다. 다른 방법을 생각하다가 시안전부에 다니는 딸애의 친구 순희의 아버지 생각이 났다.

일 년 같은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순희네 집에 갔다. 순희아버지가 알아낸 내용은 담당한 안전원의 이름과 금영이가 무직자로 단련대 발령장이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조금은 마음이 놓였지만 무직으로 단련대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화가 치밀었다.

배급도 월급도 주지 않으면서 출근하라는 것은 굶어 죽으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무직이 범죄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야말로 인권유린, 최대의 악법이다. 작년에도 무결이라는 죄 아닌 죄로 석 달 동안 억울하게 노동단련대에서 강제 노동으로 고역을 치른 딸이기에 억울한 심정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석 달도 그렇게 힘들었는데 이번에는 두 번째라고 6개월이라고 하니 끔찍한 일이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절대로 단련대에 보낼 수 없다고 다짐하며 애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며칠이 지나 한동네에 사는 딸의 친구 영숙이와 영숙이 엄마가 찾아왔다. 이들 모녀를 통해 우리 집에 비운의 그림자가 닥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얼마 전 밤에 딸애가 집에 찾아 왔다고 했다.

딸의 부탁으로 우리 집에 가서 화장품과 옷가지를 챙겨들고 나오는데 옆집 주인이 서서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었다고 했다. 이상하게 생각 했지만 별일 없겠지 하고 집으로 왔는데 30분 정도 지나서 안전원이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안전원은 신을 신은 채로 방에 들어와서 금영이를 구둣발로 사정없이 때렸다고 했다. 금영이는 너무 고통스러워 배를 끌어안고 뒹구는데 안전원은 아랑곳 하지 않고 배 얼굴 할 것 없이 주먹으로 사정없이 치고 계속 발길질을 해대더니 금영이를 끌고 가버렸다는 것이었다.

영숙이 엄마 말이 “어쩌면 남자도 아닌 여자를 그렇게 모질게 때릴 수 있는지 어디에 골병이 들었을 거요” 하였다. 그 집 식구들은 너무 무섭고 온몸이 떨려와 말릴 생각도 못했고 간 다음에도 딸애가 맞는 장면이 떠올라 잠도 못 잤다고 했다.

그 후 3일인가 뒤에 금영이가 다시 왔었다고 했다. 집에 들어오지는 않고 밖으로 불러냈는데 초췌해진 모습에 웬 할머니가 왔나 했단다. 금영이는 배가 고프니 우리 집 가마 안에 밥이 조금 있는데 가져다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밥그릇을 들고 나오면서 주위를 살폈고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아 이 골목 저 골목을 돌아서 금영이가 기다리는 곳으로 왔다고 했다. 어두운 골목에 앉아 금영이가 그간 있었던 이야기를 했다며 그간의 일을 말해 주었다.

금영이는 약속이 있어서 역전에 나갔다가 함흥에서 온 아는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들과 함께 역전 분주소의 단속을 당했다. 금영이는 그렇게 끌려갔다가 단련대로 이송되기 하루 전날 용케 탈출했단다. 영숙이는 이제 금영이가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고 했다.

이젠 딸애를 영원히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마음은 찢기는 듯 아팠다. 모든 것에 대한 증오로 미칠 지경이었다. 우리가 왔다는 정보를 전해 들었는지 그날부터 안전원들이 이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매일 무리를 지어 와서 딸이 어디 있는지 물었다.

부엌마루도 열어보고 이불장문도 열어보며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순식간에 우리 집은 반혁명 분자의 집으로 변했고 감시를 받게 되었다. 낮이면 낮 밤이면 밤 가리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들어와서는 무슨 큰 죄인이라도 되는 듯 우리 양주를 못살게 굴었다.
 
우리를 괴롭히는 게 좀 뜸해지는가 싶었는데 시안전부 감찰과에서 두 명의 안전원이 왔다. 담배 두 통을 사다주었다. 안전원 특유의 협박은 없이 온화한 분위기여서 담화를 나눴다. 우리 애가 무슨 죄를 지었냐고 물으니 숱한 죄수들을 도망가게 했다고 했다.

후에 안 바에 의하면 도망간 사람은 없었고 딱 한 명 외지에서 온 처녀애가 있었는데 그 애도 잡혔다고 한다. 코에 걸면 코걸이요 귀에 걸면 귀걸이인 세상이라 없는 죄도 덮어씌우면 죄가 되는 세상이다.

딸애가 없어진 지 1년이 되었을 때 도보위부와 도안전부에 각각 신소편지를 했었다. 편지내용은 딸애의 무죄를 논증하고 안전원들의 가혹한 박해가 딸로 하여금 없어지게 하였다는 것으로 증인으로 명옥이와 영숙이 엄마를 내세우고 주재원과 담당안전원은 딸이 없어진데 대해 책임지고 부모에게 사죄할 것을 주장하는 내용이었다.

편지를 보낸 지 3일째 되는 날 도보위부 요원이 요해를 나왔다. 주위 사람들을 다 만나보고 온 보위원은 지금 안전원들의 폭력행위가 점점 심해져서 제지시킬 필요가 있다며 중국에 친척이 있다니 도강증을 발급받아 가지고 딸을 찾으라고 하였다.

다 아랫사람들이 일을 잘못 처리하여 그렇게 된 것이니 딸을 찾아 데리고 단동영사관에 찾아가면 귀국시켜 줄 것이며 죄를 묻지 않는다는 것과 도강증 발급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금영이가 강이 풀릴 때 건너가서 무사히 건넜는지 걱정이 된다고 하는 것이었다.

주위의 가까운 사람들조차 딸이 죽었는지 관심도 없는데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걱정해주니 눈물이 났다. 딸의 생사를 걱정하던 그 보위원은 내 일생에서 잊을 수 없는 몇 안 되는 고마운 분들 중의 한사람이다.

도안전국에서는 소식조차 없었다. 아마도 ‘가재도 게 편’ 이라고 싸고돌기에 바빴을 것이다. 또한 도강증을 신청하면 중국에 갈수는 있겠지만 갈 여비도 없고 당장 먹고 살아야했기에 그럴 여유가 없었다.

시간이 되는대로 산에 가서 이삭도 줍고 나물도 캐고 뻥튀기 장사에 심지어는 샘물을 길어다 물장사도 하고 열심히 노력하였지만 두 양주와 어린 손녀까지 세 식구 입에 풀칠도 어려웠다. 5살짜리 손녀가 굶어죽었다.

이렇게 있다가는 우리 양주도 굶어 죽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더는 이렇게 살수 없어서 단칸방 집을 헐값에 팔고 아들이 사는 농촌 주변의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짐을 풀었다. 산속에 오두막을 짓고 집 판돈으로 식량을 사서 임시로 먹으면서 살았다.

영감은 밭을 일구어 농사를 시작했고 나는 약초며 나물이며 닥치는 대로 뜯었다. 비오는 날에조차 쉬지 않고 산속을 헤맸으나 생활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산에 명줄을 건 사람이 너무 많아서 하루 종일 산판을 뒤져도 거의 빈손으로 돌아오는 때가 많았고 영감도 농사 경험이 없다보니 수확이 몇 달 먹기 힘든 정도였다.

2년을 지내니 산에 약초도 멸종되어 더는 캘 수 없었고 농사지은 것도 다 소비하고 어떻게 살아갈지 또다시 막막했다. 그런데 우리 양주는 살 팔자였는지 죽었다고 생각했던 딸이 소식과 함께 돈을 보내왔다.

딸이 준 돈으로 다시 고향에 가서 괜찮은 집도 사고 고급 텔레비전과 녹화기, 녹음기에 여러 가지 예쁜 가정용품도 마련했다. 없이 산다고 얕보고 멸시하던 친척들과 동네 사람들도 찾아와 비유를 맞추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군대에 갔던 막내아들도 마침 제대하여 돌아오고 큰 아들도 돌아와 다같이 모여 살게 되었다. 아들들 집도 마련해주고 장사밑천도 마련해주어 더는 살아가는데 걱정이 없었지만 딸을 보고픈 마음은 더 간절해졌다. 그리고 드디어 딸의 도움으로 작년 4월 한국 땅을 밟게 되었다.

탈북자 김금실(가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