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93년도부터 언니와 함께 중국연선지대에 장사를 다녔다. 언니는 고등학교 졸업반이었는데, 장사랍시고 몸을 움직이면 돈을 좀 벌수 있었기에 중국을 드나들었다. 당시 내 나이는 14살이었다.

그 후로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시간만 나면 중국물건을 받으러 언니를 따라다녔다. 담임선생님한테 선물을 조금 드리면 출석 같은 것은 따지지 않았다. 1996년의 일이다. 16살 때 언니를 따라 다시 두만강을 건넜다.

어느 날 우리가 묵고 있던 집 주인이 어디론가 함께 가자고 했다. 다른 언니들도 함께 가는 길이어서 주저 없이 따라 나섰다. 어느 외딴집에 도착하자 그 집 주인이 언니들과 나를 바라보며 데려온 사람에게 중국말로 무엇인가 속삭이는 것이었다.

예전에 여자들을 팔아먹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들었던지라 몹시 긴장을 했었다. 저녁을 대충 먹고 나서 안내해준 조선족 청년에게 물었다. “우리를 팔려고 했나요?” 청년이 대답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알고 왔는데 너만 모르고 왔다.” 엉뚱하고 기막힌 일에 말려들었다 싶었지만 당시의 형편에서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럼 나는 어떻게 되나요?”

청년은 우리를 중국의 안쪽(변방에서 떨어진 곳)으로 데려간다고 했다. 다음날 언니가 떠났다. 그 다음날에는 청진에 있는 언니와 내가 낯선 사람들을 따라 떠나게 되었다. 나는 남자를 전혀 몰랐었고, 또 어머니로부터 여자는 시집갈 때까지 정조를 지켜야 한다고 너무나 많이 들어왔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에 어쩔 줄을 몰랐다. 주저하고 망설이는 나의 눈앞에 시퍼런 칼이 다가왔다. 말을 듣지 않으면 죽여 버린다고 협박을 해 왔다. 나는 그때처럼 사람이 그렇게 무서워 보인적이 없었다. 낯선 남자들을 따라 나서야 했던 상황. 고향에서 나를 기다리실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고,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청진 언니와 나는 안쪽으로 팔려가게 되었다. 북한에 어린 아들을 두고 왔다는 청진 언니는 장사가 망해 피를 팔아(당시 북한에서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 피를 팔면 밀가루를 줬음) 장사밑천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장사가 또 망하는 바람에 중국으로 넘어 왔는데 이름도 모르는 중국 내륙의 59살 먹은 총각한테 팔려가는 신세가 되었다. 나는 어린 탓인지 나보다 9살 많은 남자에게 팔려가게 되었다. 그때 나를 팔았던 조선족은 ‘신랑감’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머리를 가로저으라고 나름대로 ‘선심’을 썼다.

나는 중국 돈 8000위안에 팔려갔다. 연애 한 번 못해본 나다. 한창 공부할 나이 이기도 했다. 그런 내가 먼 타향에서 말도 안 통하는 중국인에게 팔려가는 신세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언니들과 헤어지고 앞으로 낯선 곳에서 나 혼자 모든 걸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막막했다.

며칠 후, 나는 도망칠 생각으로 부엌에 가는 척 하며 문을 열고 나섰다. 아니, 나서려고 하는데, 문은 쇄사슬로 잠겨 있었다. 아닌 밤중에 문소리가 나자 집 안에서 난리가 났다. 내친걸음이라 대문을 타고 넘어 죽을 각오로 도망을 쳤다.

사랑하지도 않고, 한 민족도 아닌 남자에게 16살의 순정을 바쳐야 한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5시간 정도 숨어 있었다. 두려움과 추위를 뒤로 한 채 멀리 멀리 달음질쳤다. 산길을 타야만 붙잡히지 않을 꺼라 생각해 산을 탔다.

봉우리 세 개쯤을 울면서 넘었다. 배고프고 목이 말라 눈을 먹었고, 가다가 지치고 졸리면 눈 위에 소나무 가지를 쌓아놓고 쪽잠을 잤다. 30분 정도 자다가 너무 추워서 일어났다. 몸은 꼬집어도 아프지가 않았다.

이빨이 덜덜 부딪쳤다. 내입에선 그냥 “엄마”란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엄마만 찾으며 산속에서 그것도 내의만 입은 채 눈 위에서 소나무 가지를 이불처럼 가리고 울었다.

너무 추위에 떨던 나머지 그날 이후로 피부가 이상해졌다. ‘절대 붙잡히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 속에 얼어붙은 몸과 다리를 가까스로 움직이면서, 쓰린 얼굴을 감싸쥐며 나는 또 다시 도망자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몰랐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걷기만 했다. 가다보니 눈앞에 저수지가 있고 그 옆에 작은 초막집이 하나 있었다. 굴뚝에서 연기가 났다. 일단 먹어야겠다 생각하고 용기를 내어 그 집 근처에 다가가 집안을 은밀히 훔쳐 보았는데 안에는 연세 많은 할아버지 한분이 홀로 계셨다.

신세를 져야겠다고 생각했다. 70세정도 되어 보이는 노인이라 별일 없을거라 생각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지금도 그때 내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조금 배워두었던 중국어로 “워 베이 초생라이더 쑈우쿠냥. 얼라 방망바.”(난 북한에서 온 어린 소녀입니다. 배고픈데 좀 도와주세요.) 할아버지가 들어오라고 했다.

몸을 녹이고 있는데 발이 가려웠다. 참기 힘든 고통이었다. 잠시 후 할아버지가 두부 두 모 정도를 그릇에 담아 들여오고 밥 담은 소래(그릇)를 내 앞에 내밀었다. 저수지에서 잡았다는 고기도 요리해주셨다. 내가 허겁지겁 먹어대는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곤 할아버지는 자리를 펴 주셨다.

잠을 자고 일어나보니 중국 언니들이 내 주위에 빙 둘러 앉아 있었다. 근처에 요양소(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머무는 곳)가 있었는데 그곳 언니들이었다. 언니들은 홀로 계신 할아버지를 위해 방문했던 것이다. 나는 그곳 언니들과 어울렸다. 이젠 살았다 싶었다.

그러던 중 일이 터졌다. 북한 여자가 있다는 소리를 듣고 내가 팔려갔던 집에서 트럭을 끌고 온 것이었다. 나는 안가겠다고 발버둥을 치며 언니들에게 살려달라고 호소했다. 언니들을 밀쳐낸 남자들은 나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너무나 아팠다. 트럭의 남자들은 나를 꽁꽁 묶은 채 차에 던져버렸다.

나를 태운 트럭이 요양소를 막 지나치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공안을 태운 트럭 두 대가 나타났다. 언니들이 전화로 상황을 알린 모양이었다. 공안들이 차에 다가왔다. 나를 때리던 남자들에게 수갑을 채웠고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던 나에게도 수갑을 내밀었다.

난생 처음 수갑을 찬 나는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춥고 배고파서가 아니라 내 앞에 다가올 현실을 너무나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겁에 질려 떨고 있었다. 공안들은 내가 도망가지 못하게 내 손과 침대를 수갑으로 연결해 놓았다.

다음날부터 조사가 시작되었다. 난 중국의 공안오빠한테 살려달라고, 북으로 돌아가면 죽는다고 울면서 애원했다. 나는 운좋게 파출소에서 나올 수 있었고 공안 부책임자의 도움으로 식당에서 일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공안 오빠를 통해서 남한에 대해 많이 듣게 되었다. 가끔은 식당에 공안 오빠의 친구들이 와서 식사를 했다. 나에게 용돈(팁)도 주었다. 지금도 그 공안 오빠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그 식당에서는 한 달에 150원씩 받았다. 하루종일 설거지를 하였고 채소를 씻었다. 그렇게 일년만 벌어서 집에 가려고 했다.

그런데 얼마 후 나랑 같이 팔려갔던 청진 언니가 식당에 나타났다. 우리를 팔아먹은 사람들이 붙잡혀서 언니도 잡혀왔는데 공안 오빠가 살려줬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며칠 후 큰일이 터졌다. 청진 언니가 팔려갔던 남자의 집에서 성 공안국의 아는 사람에게 우리를 일러바친 것이다. 성 공안국에서 우리들을 잡으러 왔다.

우리를 구해준 공안오빠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못한 채 잡혀가고 말았다. 그렇게 언니와 나는 성 공안국의 담 높은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높은 보초막에 군대가 총을 들고 서있고 담장 꼭대기에는 전기선들이 칭칭 감겨 있었다.

감방으로 들어가 보니 철문들 사이로 죄수들이 보였다. 중국의 여자죄인들은 밖에만 못나갈 뿐 요양소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밖에서 음식도 들여다 먹고 화장품들도 잘 쓰고 있었다.

‘북한의 감옥도 이럴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후 변방부대로 끌려갔다. 변방부대 감방(탈북자 임시 수용소)에서 나처럼 탈북 했던 여럿의 북한 사람들을 만났다. 중국 측에서 북한에 넘겨줄 인원을 맞추느라 대기시킨 사람들이었다.

중국에 팔려가서 6년 만에 잡혀왔다는 사람, 두만강을 건넌 지 8일 만에 잡혀왔다는 사람…. 별의별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나보다 덩치는 컸지만 나이는 열다섯 살인 어린애도 있었다. 중국에 온 지 일 년도 안 되어 잡혔다고 했다.

그 아이는 남편과 같이 살면서 행복했다고 하면서 중국 남편이 자기를 살리려고 돈도 많이 썼다고 했다. 심지어 자기는 임신 중이라고 했다. 너무나 놀라웠다. 그때쯤이면 학교 다니고, 공부하느라 정신없고, 아직 엄마한테서 어리광을 부릴 나이의 어린애가 애엄마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부모님은 두 분 모두 굶어서 돌아가셨고, 남동생은 같이 중국으로 넘어오다가 물에 떠내려가서 죽었다고 했다. 참 불쌍했다. 그 말을 하면서 울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북송되는 날이었다. 차를 타고 북한으로 넘어갔다. 구경꾼은 왜 그렇게 많은지….

나는 우리를 욕하는 사람들과 보위부의 눈길이 정말 무서웠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욕이 시작되었다. “이 미친 간나들! 그렇게 X을 중국 놈에게 주고 싶었냐? 간나새끼들, 죽어봐라! 야! 머리 숙여! 머리 쳐들면 죽여 버린다?”

(2)
몸수색이 시작됐다. 함께 붙잡혀온 우리들 세 명은 어느 음침한 방으로 들어갔다. 여군들이 서 있었다. 욕은 하지 않았다. 대신 팬티의 혼솔부터 옷과 신발, 묶은 머리까지 일일이 풀어 헤치고 꼼꼼히 검사했다. 신발깔창도 뜯어보았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우리를, 두 팔 벌리게 한 후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시키더니 다리를 벌린 채 뜀뛰기를 시켰다.

중국에 건너갔다가 자궁 안에 돈을 넣고 오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하는 짓이었다. 뛰고 앉았다 일어섰다 하니까 민망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여군들은 아랑곳도 하지 않았다. 생리대를 차고 온 여자에게 생리대를 벗으라고 하더니 갈가리 찢어서 일일이 살펴보았다. 몸 검사를 한 후 우리는 감방에 갇히게 되었다.

감방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다 중국에 건너갔던 사람들이었다. 앞에는 모두 철장으로 막혀있다. 뒤편에 개구멍 같은 작은 문이 있었는데 조사 받으러 갈 때마다 그곳으로 기어서 들락거려야 했다.

세 평 정도의 방에 강제 북송된 여자들 20명이 두 줄로 쪼그리고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형편이었다. 화장실을 가려고 하면 다리가 펴지지 않았고, 또 일어나면 빈혈이 나 얼굴 가죽이 벗겨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렇게 나는 7개월을 앉아 있었다. 아침 4시 30분에 “기상”구령과 함께 일어나서 두 줄로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밤 10시가 되어야 “취침”소리와 함께 잘 수 있었다. 자는것 마저 두 줄로 앉았던 사람들이 머리를 서로 벽 쪽으로 하고 사이사이에 다리를 넣어 옆으로 모로 하고 잤다.

키가 큰 아줌마들은 상대방의 얼굴, 입주위에 발을 놓고 자야 했다. 이와 벼룩은 또 얼마나 많던지. 겨울이라 추웠지만 사람이 많아서 몸을 비비면 그나마 추위를 견딜 수 있었다. 밥이라곤 통강냉이를 퉁퉁 불려 삶은 것을 한 50알정도 주었다.

그것마저 말을 안 듣는다고 주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 앉아있는 것이 고통스러워 너나없이 화장실을 간다며 다리를 펼 구실을 대는데 그나마도 요구대로 보내주질 않았다. 나는 키가 작아서 제일 뒤쪽 화장실 앞에 앉았었는데 계호원의 눈을 피해 재주껏 다리를 펴는 행운을 누리곤 했었다.

임신했던 그 열다섯 살짜리 여자아이를 김 선생이란 자가 철창 밖으로 불러냈다. “중국새끼 종자를 받아온 ×새끼. 무슨 염치로 밥을 먹으려고 하냐? 중국 종자를 우리가 왜 키워?”하면서 임신한 여자아이의 아랫배를 그 딱딱한 군화발로 계속 걷어찼다.

여자아이의 비명소리가 울렸다. “선생님! 제발, 잘못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 제발!”하는데 그 선생이란 자는 “이 ×새끼. 아직 덜 아프구나. 소리 지르는 걸 보니!” 하면서 여자애의 아랫배만 집중적으로 걷어찼다.

우리들 모두가 “김 선생님, 살려주십시오!”를 외쳤다. 하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결국 그 아이는 하혈을 하기 시작했다. 김 선생이란 자는 매질을 멈추지 않았다. 그 아이는 끝내 유산을 했고, 이후로 시름시름 앓다가 숨을 거두고 말았다.

15살 여자애의 죽음을 보고 나는 처음으로 <내 나라 제일로 좋아>를 노래 부르며 살아왔던 내 자신이 비참하고, 불쌍하고, 가엾은 존재로 느껴졌다. <내 나라>에 대한 복수심과 분노가 끓어오름을 느꼈다.

그날 그 여자아이를 동정해주었다는 죄 아닌 죄로 우리 모두는 철창 밖으로 손을 내밀고 죽도록 얻어맞았다. 정말 손에 느낌이 없을 정도로 실컷 맞았다. 처음에 맞을 때는 철창 안으로 손을 빼서 더 이상 맞지 않으려고 했지만 선생이란 자가 방으로 들어오면 더 끔찍하게 때리기 때문에 숨을 가다듬고 손을 내밀고 또 내밀 수밖에 없었다.

10년이 지났지만 나의 손가락에는 그 때의 흔적이 지워지지 않고 있다. 손가락도 삐뚤어져서 보기 싫다. 손을 보면 상처자국이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우리 고향의 보위부에서 나를 데리러 왔다. 그리고 나는 보위부 지도원을 따라 고향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보위부 지도원이 “중국 도망갔다가 북송 된 사람은 네가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순간 오싹했고, 등에서는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이제 끝장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고향의 도 보위부에서 나를 기다리는 것은 차디 찬 독방이었다. 너무 추웠다. 감방은 국경의 감옥하고 똑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바닥은 마루로 되어 있어 틈새가 많고, 틈새로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추위가 몰려들었다. 다른 방에는 여럿이 함께 있었는데 나는 탈북자라서 독방에 갇혔다.

이불도, 베개도 없이 그냥 쪼그리고 누웠다. 바닥에서 바람이 너무 세게 들어와서 코끝과 이마가 얼어들었다. 나는 그 추운 겨울에 국경보위부 감방에서 3개월을 있어야 했고 고향의 보위부 감방에서 4개월을 지내야 했다. 아침 4시부터 밤 11시까지 무릎 꿇고 앉아 있어야 했고, 선생이 지나갈 때 머리는 꼭 숙여야 했다.

머리를 조금이라도 쳐들거나 눈으로 훔쳐보면 철창밖에 나와서 맞아야 했다. 감방 안이 춥기는 또 얼마나 추운지. 머리를 숙인 채 숨을 쉬고 나면 옷에 입김이 묻어 옷깃이 얼어붙곤 했다. 훈련은 훈련대로 정신을 빼 놓곤 했다. “뒤로 돌아!” 하면 일제히 돌아야 하는데 천천히 도는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나오게 해서 때렸다.

그리고 선생이란 자는 아파서 우는 죄수 목소리를 듣고 너털웃음을 쳐 댔다. 우리도 웃게 만들었다. 크게 웃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모두 함께 혼나곤 했다. 억지로 웃는 일 만큼 힘든 일이 세상에 있을 것 같지 않다.

나는 보위부 조사를 8번 정도 받았다. 중국에 넘어갔다 붙잡힌 사람은 군적으로 내가 처음이라 공개처형을 한다는 것이다. 두려웠다. 거의 보름에 한 번씩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조사를 하는데 매번 불려 가면서 ‘오늘이 죽는 날이 아닌가?’ 하는 마음에 떨리는 걸음을 겨우 옮기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를 호송해온 보위부 지도원이 나를 찾아 왔다. 언제나 나를 안쓰러운 눈길로 쳐다보곤 하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날은 나를 보고 웃으면서 “너 이제 해방이다.” 라고 했다.

나는 나의 귀를 의심했다. “선생님 저는 어떻게 됩니까?”라고 묻자 보위부 지도원은 나더러 “모른 척 해라. 너 오늘 석방이다.” 라고 하였다. 조사실로 갔다. 보위부 지도원은 내가 아직 공민증(주민증)도 없는 나이이기 때문에 당에서 배려로 널 용서해 주는 거라고, 이제부터 열심히 당을 위해 살라고 했다.

결국 열여섯 살의 나이가 나를 살린 셈이었다. 그렇게 나는 7개월의 보위부 감방생활을 마치고 석방되었다.

(3)
기분이 날아갈 듯 기뻤다. 집으로 와서 그 동안의 긴장을 가라앉히고 따스한 아랫목에 누웠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계속 나의 머리맡에 앉아계셨다. 나와 함께 숨을 쉬면서 동시 호흡을 유도했고 달아 오른 나의 얼굴과 몸을 밤새 수건으로 문질러 주셨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숨이 막혀 온다.

그해 여름 나는 혜산에서 평양까지 소금 장사를 했다. 그런데 여행증이 없다는 이유로 간리집결소에 붙잡혀 한 달 동안 또 다시 개 취급을 당했다. 여행증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까지 갇혀 살아야 하는 북한 땅. 생각할수록 기가 막힌다.

세상 사람들은 그 북한의 여행증이란 것을 알기나 할까? 여행증이 없으면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장례를 치른 후에야 가볼 수 있는 그런 사회가, 그런 나라가 어디에 또 있을까?

파란 죄수복을 입고 매일 아침 일을 했다. 밭김도 매고 똥통을 퍼 나르기도 했다. 집결소 뒤에 흐르는 강에서 사금도 캤다. 하루는 너무 배가 고파 지도원들이 못 보는 사이 김매던 양배추 밭에서 양배추를 뿌리채 뽑아들고 정신없이 씹어 먹었다.

운이 나빴는지 다른 사람들은 들키지 않았는데 나만 들켜버렸다. 반장이란 자가 ‘똥 벌칙’을 주었다. ‘똥 벌칙’ 이란 똥을 몸에 끼얹는 벌이다. 정말 끔찍하고, 냄새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심했다. 구역질이 났다. 방금 먹은 양배추가 통째로 입에서 쏟아졌다. 저녁에 주는 콩밥을 먹어야 했는데, 손에서 똥냄새가 나서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먹었다. 먹으면 또 올라오곤 했지만 살기 위해 나는 콩밥을 먹었다. 며칠이 지나서야 몸에서 그 소름끼치는 냄새가 사라진 듯했다. 한달 후, 집결소 문을 나서 다시 고향으로 갔다. 당시 선거가 있었기 때문에 큰 잘못이 없다고 인정된 사람들은 고향으로 보내주었다. 고향으로 간 나는 곧바로 공민증을 탔고 선거에도 참가했다.

반기는 부모님들에겐 집결소에 갇혔었던 말을 꺼내지 못했다. 장사를 하며 잘 먹고 잘 살다 온 것처럼 말씀드렸다. 그러던 차에 또 일이 터졌다. 우리 쪽 안전부에서 내가 그동안 없어졌다고, 또 중국 갔다 온 것이라고 잡으러 왔다.

억울했지만 또 다시 철창 속에 갇힌 신세가 됐다. 이후 노동단련대 3개월 판정을 받았다. 나는 노동단련대라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4)
감방이나 집결소는 그래도 옥수수나 콩을 먹였는데 단련대에서는 알곡 자체를 구경할 수가 없었다. 반장이란 자와 조장이란 자는 내가 일을 못한다고 내 뒤만 따라다니며 정신없이 회초리를 휘두르곤 했다. 매도 아팠지만, 나보다 더 큰 통나무를 나르는 것이 나에겐 더 벅찬 일이었다.

마음은 정말이지 앞으로 뛰고 싶었지만 위에서 어깨를 짓누르는 통나무의 무게를 이겨낼 수가 없었다. 다리만 허우적일 뿐 나가지 않는 몸. 그 위로 사정없이 내려치는 조장이란 자의 회초리….

목재를 실으러 차가 오는 날이면 그날은 정말 죽는 날이었다. 사람들의 힘으로 키만 한 높이의 적재함에 통나무를 실어야 하는데 그때는 정말 무시무시한 순간들이 우리를 위협하곤 했다. 모두들 밑에서 나무를 올리는 일만큼은 피하려 했다. 위에서 자칫 실수를 하면 죽거나 병신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다행이랄까, 늘 힘이 없다고 얻어맞던 나는 그때마다 위에서 일하는 행운을 누리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적재함 위에서 나무를 받고 있었는데 곁에 쌓아 두었던 통나무들이 밀리면서 나무와 나무 사이에 손이 끼이고 말았다. 끼었던 손등을 간신히 뽑아내자 피부가 벗겨진 사이로 하얀 뼈가 보였다.

병원은 커녕 일터를 떠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배려랍시고 일은 시키지 않았지만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을 부여잡고 엉엉 울면서 남들이 일하는 모습을 바라봐야 했다. 목재를 나르는 일보다 더 고된 일도 있다.

목재를 실어 나르는 찻길을 닦는 일이었는데 돌과 모래주머니를 나르는 너무나 고된 노동이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까지 혹독한 처벌을 받아야 했는지…. 나는 지금도 이해할 수가 없다.

탈북자 선우은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