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도 참석해 “청춘도 생명도 다 바쳐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을 결사수호한 민족의 장한 영웅들이며 진정한 애국자들”이라고 한껏 치켜세운 북한의 노병들은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까.
“김일성 땐 그래도 보람이 있었다”고 말하는 북한군 노병출신의 탈북자가 있다. 2006년 한국에 입국해 생활하고 있는 황 씨 성을 가진 이 탈북민은 “당시만 해도 혁명 1세대는 빨치산, 혁명 2세대는 6.25전쟁에 참가했던 사람이라는 사회적 풍토가 작용하고 있어 사는 보람과 상대적 행복감이 있었다”고 이야기 했다.
“특히 전쟁 중에 사망한 군인들과 영예군인(상이군인)자녀들을 만경대나 남포혁명학원 같은 곳으로 보내도록 하는 행정조치가 취해지고 군에 남아있던 동료들이 장군이 되는가 하면 낙동강까지 함께 갔던 동료들이 당과 정부의 주요간부가 되는 것을 보고 노병들은 누구나 긍지를 느꼈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일 때는 80년대 까지만 좋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올해 79살에 난 의용군출신의 한 탈북민은 “당시엔 흑백TV와 녹음기 등 좋은 물건이 나오면 전쟁참가자들에게 우선순위로 공급했고, 국가에서 우리(전쟁참가자들)를 공급대상 명단에 넣고 매달 식료품과 돈을 공급해주었다”고 이야기했다.
지금도 북한에선 영웅칭호를 받은 자와 국기훈장 1급 수상자에 한해 평생 동안 쌀 600g과 기준월급의 60%를 공급한다는 원칙이 있다. 하지만 90년대 초반부터 북한에 경제사정악화에 따른 대규모 기아사태가 발생하면서 이 모든 조치가 무용지물이 돼 버렸다는 이야기다.
“김정일 때는 오로지 정치적으로 이용만 당하는 사람들이 노병이다”는 증언도 나왔다. 지난 해 팔순의 아버지를 모시고 대한민국에 입국한 탈북자 허영광씨는 “내 아버지가 전쟁참가자고 이른바 노병인데 그 흔해빠진 노병대회에도 한번 못 참가했을 뿐 아니라 동네 애들에게서조차 폐병환자로 따돌림을 받으며 사셨다”고 했다.
허씨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에서 전쟁참가자들의 생활환경은 북한의 경제난과 궤를 같이 했다. 한때 ‘낙동강줄기’로 통하던 북한의 노병들이 당, 정, 군의 주요간부로 등용되고 사회적으로 우대를 받던 때가 있었던 것은 맞다. 정치적 후각이 발달된 김정일도 간부대열의 노중청(老中靑)을 강조하면서 전쟁참가자들을 기용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극심한 경제난과 식량난에 따른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서 김정은은 선배들을 배신했고 노병들을 잊어버렸다. 국가가 식량배급과 공장운영을 포기했던 상황에서 이른바 전쟁영웅들에게 약속했던 600에 60(쌀 600g과 기준월급의 60%)을 어떻게 생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북한에서의 고난의 행군시기 가장 먼저 죽어나간 사람들이 노병이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 말이기도 하다.
지금 북한의 전쟁참가자들이 국가로부터 받는 돈은 한 달에 1,600원 정도. 이 돈이면 시장에서 국밥 한 그릇 사먹기도 어렵다. 허 씨의 아버지처럼 병에 걸려도 돈이 없어 병원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노병들이 허다하다. 더 심각한건 이들 전쟁참가자들의 평균나이가 80세가량이어서 운신조차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정은 정권 들어서 3번이나 전국의 병약한 노인(노병)들이 평양으로 불려 올라간다고 한 허 씨는 “북한에 있을 때 대회에 참가했던 아버지 주변사람들의 말을 들으니 ‘뙤약볕에서 군복을 입고 행사에 참가하는 일이 전쟁터에서 싸우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또 “과학자대회니 어머니 대회니 할 때는 손목시계나 TV와 같은 선물이라도 주었다고 하는데 노병대회 참가자들에겐 몸보신용이라는 닭곰(2012년)과 내의 몇벌에 양말 몇켤레, 그리고 평소엔 입지도 못하는 군복(2014년)이 전부였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가”며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정은은 그 병약한 노병들이 죽기 전까지 심혈을 기울여 정통성 및 계승성을 확보할 심산인 듯하다. 이번 노병대회 때도 주로 한 말이 전통과 계승이었고 조국수호정신을 빗대 “새 세대들이 노병들처럼 당과 수령께 충성을 다하라”는 말만 쏟아내고 있다.
김설송 기자
등록일 : 2015-07-27 (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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